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고독이라는 단어마저. 외로움이라는 낱말에 흠칫했던 나는, 고독을 들여다보자 마음은 벼려지지 않았다. 고독은 홀로 외로움이라고 새겨야 간신히 가슴에 다가오는 반면, 외로움은 그냥 풋 것으로 옆구리를 쑤시기 때문이며, 고독은 손때 묻은 가방끈 냄새가 나고 외로움은 가을날 햇빛에 마른 들먼지 냄새가 나는 탓이다. 외로움을 外로움이라고 써 본다. 안(內)으로 감싸여지지 못하여 밖(外)으로 내쳐짐을 느낀다(로움). 아니면 짝짓지 못하여 외로 됨을 느낀다는 것인지? xxii-immxiii
땅거미로 까맣게 탄 철교 위로 하얗게 밝힌 차창을 이끌고 전철이 도심의 강을 건넌다. 열차의 바퀴소리는 늦은 햇살을 등에 지고 서쪽으로 잠잠히 흐르는 강의 소리에 지워졌다. 차창 속의 고달픈 하루를 보낸 자들의 지친 무표정은 보이지 않고, 전철이 지나간 교각 위로는 저녁이 여물고 있다. 하루살이들은 남은 생애를 탕진이라도 하려는 듯 맹렬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날고 있다. 사람들은 저무는 강 건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하루의 여분 위에 밥상을 펴고 마른 숟가락을 밥그릇에 드리우고 남은 끼니를 때울 것이다. 그래서 저녁을 이고 강을 건너는 전철을 보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xviii-xmmxiv
합정동에 살던 시절, 절두산에서 가양동과 행주산성 위로 피어오르던 노을을 보며 영원을 느끼고,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와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사랑이나 우정 등의 삶의 가치나 인간의 존엄성 따위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생활의 유한함과 평범성에 무릎을 꿇고, 아득하고 깊은 것들을 사유하기 보다 저녁 밥상을 마주하고 느긋한 저녁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영원, 우정, 사랑, 진실, 아름다움 등등의 것들이 생활과 부딪혀 하찮은 것들이 되어버리는 현실 아래 비굴하게 굴복해버리는 이 나이가 그다지 싫지는 않다. 하지만 일몰의 시간이 지난 후 서쪽 하늘을 피빛으로 뒤덮는 노을이 처참하게 아름다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xix-viimmxvi
나, 좌표 한 점이 되어라 바람의 무리에 속하는 줄 알았으나, 나는 대지와 대지의 특정한 좌표에 매여있는 사람이다. 이 도시의 빌딩과 그 너머로 간헐적으로 바라보이는 산과 들의 윤곽 너머를 더 이상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까지 떠밀려 온 것이다. 그리고 자유나 사랑 그리고 진실이라든가 우정 등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저녁이 무너지는 밤에, 바람을 맞이하며 라디오를 듣거나, 지하로 내려가 세상 구석의 슬픈 노래를 들으며, 내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것들이, 아스라하고 그립고 또 그만큼 아름다웠던 것이라고, 속삭이면서도, 지금의 나를, 예전보다 더 아끼게 된 것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아마 더 이상 너를 그리워하거나 사랑할 나이가 아닌 탓인지도 모른다.
노래에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대에는 시(詩)를 바람(風)이라고도 했다. 그 바람은 들(민중)에서 노래가 되어 제왕의 침전으로 흘러들었다. 어느 한 개인의 노래라면, "시경의 노래를 전반적으로 평하자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세유의 노래(La Marseillaise)가 민중 속에서 울려퍼질 때 혁명의 바람이 프랑스를 휩쓸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중 속에서 소리 높게 울릴 때, 거기에는 결단코 사악함이 없다. 개인이 사악한 것이지, 민중은 사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래는 가볍고 바람처럼 세상의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바람이 불면 풀이 눕고 나무잎이 흔들리듯 세상은 그 노래를 듣는다.바람둥이를 한자로 쓴다면, 風人일 것이다. 하지만 풍인이란 나..
매미는 태양의 무리일까 매미는 뜨거운 햇볕을 향해 우는 태양의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자 매미가 울었다. 어렸을 적에, 잠자리나 매미 심지어는 파리의 날개라도 떼어낸다면, 바람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바람이 눈물을 흘리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나무가지에 깃들어 바람에 자지러지게 울고 굼벵이로 천적(거미, 사마귀, 말벌 등)을 피해 소수의 해(3년, 5년, 7년, 11년, 13년, 17년 등) 동안 땅 밑 어둠 속에서 살다가, 햇빛 좋은 어느 여름날, 나무를 타고 기어올라 태양를 향해 한달동안 자지러지게 울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이 서글픈 곤충 또한 바람의 무리라고 해주자.폭염의 열기가 꺽인 어느 날이었다. 근무가 끝나갈 ..
새, 공기가 지닌 질량의 우아함에 대하여 작은 것이란 하찮고 불쌍하다. 참새의 다리는 가늘다 못해 투명하고, 심장의 크기는 콩알보다 작을 것이다. 참새들을 보면서 죽어서 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접기로 했다. 참새가 날아갈 수 있는 최대거리는 백미터 쯤이나 될까? 참새가 바람을 품고 활공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선회를 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벌레처럼 날개를 퍼덕여서 직선으로 몇십미터를 날아가 폴싹 앉는 것이 고작이다. 멀리 날 수가 없는 탓에 텃새인 것이다. 아마 반경 1Km 정도의 공간에서 3~5년 정도를 살다가 죽고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놈들은 먼지처럼 난다. 바람의 무리라기에는 오히려 땅의 무리, 먼지처럼 보인다. 모이를 먹으러 떼지어 오는 녀석들의 모습은 바람결에 날려온 먼지다. 또 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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