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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gatorium

가을연습7/A

旅인 2018. 6. 3. 16:09

ATOPIA와 아무 것도 없는 촌 구석

아토피아(Atopia)는 국경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장소(τόπος)가 아니다(οὐ)라는 의미도 있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은 사전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촌 구석, 번거로운 일이 없는 자연의 낙토를 말한다. 장자의 응제왕편에는 여섯가지 끝(六極 : 상하와 사방 즉 공간이나 우주)을 벗어나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노닐겠다以出六極之外 而遊無何有之鄕 는 말이 나온다. 이는 공간 좌표 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노닥거릴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유토피아가 이상향이라면, 아토피아는 무하유지향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낱말들이 만들어진 때는 이천년이 넘었지만, 1984년 명명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개념에 근접해 있다. 데이터와 시계열의 디지털 신호가 구축해내는 광대한 우주에는 IP라는 별이 반짝인다. 132번 은하, 제 11구역의 제 8항성의 주위를 도는 5번째 행성에서 한 사내는 광막한 사이버 스페이스를 향하여... 이메일을 보내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트위터에 정부 비판을 한다.

무하유지향의 세계로 연장을 가진 실체나 물리량을 지닌 아날로그는 틈입할 수 없다. 이 세계는 단지 디지탈 미메시스(복제)만 존재한다.

정신이 이데아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사이버 세계가 가르쳐주는 것은 현실의 미메시스야말로 바로 정신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누추함과 일상의 지겨움 대신에 뽀샵된 복제물을 디지털의 공간에 투사한다. 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야누스적이다. 단일한 자아는 실명과 익명으로 분열된다. 모니터 바깥의 실명의 자아는 아토피아 속으로 스며든 익명의 자아를 부추겨 갖가지 사악한 짓을 자행토록 하거나 혹은 품위있는 위선자로 변신하게도 한다. 모니터 밖 현실의 자아야말로 억압되고 페르소나로 가장된 자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신이 조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익명의 자아야말로 억압되지 않은 탓에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가깝다. 아무튼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는 유인원은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정신분열증을 즐기거나 다중인격화된다. 이러한 점이 실재와 미메시스(복제) 둘 중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가 하는 문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현실과 상상 사이는 내파(內破)된다. 상상은 등차적인 현실을 구축한다. 게임이라 여기고 함부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인류는 멸망할 수도 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우리는 은밀한 사랑을 하거나, 채팅방을 열고 옷을 벗는다. 아토피아라는 존재하지 않는 대륙에서 혐오하는 것은 은밀함이며, 가려진 것이다. 은밀함은 처절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서 진실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헛 것이 참된 것을 만드는 때는 참된 것 역시 헛 것이요, 없음이 있는 것이 되는 곳에서는 있음 또한 없음이라假作眞時眞亦假, 無爲有處有還無 고 홍루몽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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