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우리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예이츠의 詩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문득 우리에게는, 너는 성산동에 살았다. 성산동과 합정동, 망원동이 너희 집 근처에 함께 섞여 있었다. 망원동은 그 이름이 아득하게 멀었고, 그 좁은 골목에 난립한 집들과 널린 빨래를 보면,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기란 정말 요원했다. 분명히 망원동의 한 가운데 임에도 간혹 합정동이 있었고, 합정동에 의해 밀려난 망원동이 성산동을 범하기도 했다.지엽적인 번지수 문제를 덮어놓고 본다면, 대체로 망원동과 합정동은 도로 양편의 상점들로 구분되었다. 성산동과 망원동 사이는, 망원동 쪽으로는 요꼬공장, 함석집, 무슨 설비, 간혹 보이는 선술집과 작부집, 자전거포로 어지럽고, 성산동 쪽은 가정집의 담벼락..
가슴의 내륙을 돌아 뼈 속으로 스미는... 어제는 맑았는데, 새벽에는 가을비가 내렸다. 빗소리에 어둠이 조금씩 씻겨가더니 아침이 왔다. 도로는 젖은 낙엽들로 물들어 있다. 가을은 젖고 떨어지고 밟히고 말라바스러지며 조금씩 겨울의 낮은 햇빛 속으로 흘러들어가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조락에서 사멸에 이르기까지의 느릿한 추이를 몽상할 수는 없지만, 이울고 떨어지고 죽고 사라지는 추이의 끝에 마침내 주검마저 사라져버린다는 기약은 처절하게 아름답다. 죽어서 사라지는 시간은, 살아서 죽기까지의 한 생애보다 더 오래된 전설일 수도 있다. 낙엽을 태우며, 봄에서 한 여름을 지나 자신들의 세포 속에 간직했어야만 했던 메마른 낙엽이 피워올리는 낮은 냄새를 들을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은 분명 치사하고 아니..
PM 3:27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나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가을이 텅비어버려 하늘이 파랗던 날, 평상 위의 고추는 자줏빛으로 햇볕을 머금고 있다. 마침 바람부는 언덕 위에 내 생애를 햇살 아래 마악 널어놓은 참이다.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마을은 먼지와 가을 햇살 속으로 눈부시게 소실되고 산맥과 하늘은 까마득해서 전설같은데, 자신의 벗은 몸을 햇빛으로 가린 개울이 산과 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이때는 내 생애 속으로 덜거덕 정차한 세상의 오후 세시 이십칠분.마침내 세상이 나를 살고 있었다는 것을 눈부신 햇살 아래,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다 그런 것이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살아가기가 힘들었다는 이 나른..
夢, 꿈이 물거품의 그림자를 빚어내는... 사내가 잠의 끝자리를 더듬자 여자는 하얗게 비어있다.여자는 툇마루에 앉아 무릎 위에 얼굴을 올려 놓은 채 바다를 보는 것 같다. 좁은 어깨 너머로 아침이 온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 밑에서부터 서서히 밝아지다가, 수평선에서 빛이 자글자글 끓기 시작하더니 아침이 해안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뭘 보고 있는거야?"자가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떨어졌던 것 같다."꿈을 꾸었어. 헤어지는 꿈을..." "그런데 우리가 있는 곳이야말로 꿈이야. 여기는 육허六虛 : 상하동서남북라는 꿈이지."여래께서는 모든 것은 꿈이 물거품의 그림자를 빚어내는 것과 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고 말씀하신다.ix-viimmxiv
난독증에서 실어증으로 가는 길, 편지 아이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다. 오랜시간동안 문맹의 상태에 빠져있던 사내는 불과 하루 이틀만에 동급생이 읽고 있는 모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휘면에서도 다른 아이들보다 오히려 앞서 있었다. 그는 책을 읽었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말을 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난독증에 시달렸던 아이는 편지 때문에 커서는 선택적 실어증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사내의 편지는 사악할 정도로 진실같은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기도 했다. 여자는 사내의 편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편지를 읽으며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사내의 가장 큰 잘못은 아무 내용이 없는 글로 여자를 울고 웃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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