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人 : 바람둥이 바람이 분다. 가을이다. 귀가 맑은 바람을 얻게 되면 소리가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민중의 소리를 바람(風)이라고 했다. 風은 악보나 글로 묶어둘 수 없는 바람과 같은 노래였다. 지은이를 알 수 없고, 바람에 풀이 눕듯 들과 고을, 저자거리로 번져갔다. 시인은 시를 짓고, 소리를 글자로 붙들어매는 자다. 풍인은 바람의 소리를 먼 곳의 고을과 장터로 실어나르는 자다. 하여 가락을 농락하고, 노랫말은 외웠을 것이나, 악보는 없었고, 글도 알지 못했다. 산과 강과 들을 지나 또 다른 마을로 건너갈 때, 지나 온 마을에서 배운 노래 속으로 풍경이 스미고, 석양과 밥 짖는 냄새, 민초들의 찌그러진 생활과 함께 허기진 자신의 신세가 비벼졌을 것이다. 그가 바람을 노래할 때,..
화이트 칼라란 빌딩이라는 곳에 책상을 내어놓으면 거기에 앉아서 뭔가를 하는 족속들이다. 이들이 무엇을 하는 지 나는 모른다. 이들은 일을 한다. 하지만 일에 대한 사유는 빈곤하다. 회사에서 밥을 빌어 먹는 이들은 일의 주체가 아니다. 임의로 일을 규정할 수 없다. 일이란 내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회장이나 사장이라는 높은 분들께서 '하라'고 강요되어지는 것들이다. 높은 분들이 정의하는 일이란 '한 것'이나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하지 않는 것'이나 '못하는 것'이다.회사의 일이란 개략적으로 따져보면 한 60% 정도는 안하는 것이 회사에 득이 되는 일이며, 한 80%정도는 안해도 회사가 까딱없으며, 한 10% 정도는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계산이라면 30% 정도만 일..
The Pillow Book ; 枕草子 마쿠라노소시(枕草子)에는 '다음날 아침의 편지'(後朝便紙)라는 것이 나온다. 밤을 함께 보내고 새벽에 돌아간 남자가 보낸 편지다. 몸을 섞은 후 서로의 체취가 사라지기 전에 편지를 곧바로 보내지 않거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의 관계가 끊어지고 만다고 책의 귀퉁이에 쓰여 있다. 첫날 하루에 한하는 것인지, 관계를 가질 때마다 편지를 보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부언되어 있지 않다. 몸보다 글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했던 시대... xiv-viimmxiv 마쿠라노소시는 1001년경 초고가 세이 쇼나곤(淸 少納言)이라는 궁녀(女房)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무라사키 시키부(紫 式部) 또한 같은 뇨보(女房)로 겐지이야기(源氏物語)를 쓴다. 경쟁자이기도 한 이 ..
천사가 있다.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이름은 있다.그 이름은 누(Nu:)라고 한다. 사실은 기의(記意: signifié)가 없는 기표(記表: signifiant)가 있을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그런데 기의없이 기표 만 떠돌다보면 기의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바로 형이상학 즉 노가리 또는 사기라는 것이다.세상에 Nu;라는 실체(記意)가 없는 이름(記表)을 던져놓는다면, 이름은 Nu:라는 갖은 허울로 치장된 영원불멸의 천사를 만들 것이며, Nu:의 존재에 대한 신학 또한 만들어질 것이다. xxviii-xmmix
우파니샤드를 다시 읽는다. 인도의 지혜는 신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108개의 스승의 아래 가까이 앉아 배운 지혜서 중 13개의 우파니샤드, 그것도 짤리고 얼마남지 않은 글 속에서 아득하여 실체를 알 수 없는 진리가 하나로 돌아가는 것(萬法歸一)을 바라볼 수 있다. 우파니샤드 속에서 말하여지는 것과 부처의 말씀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단어만 다를 뿐. 말(言)이란 진리에 다가가는 도구이자, 진리에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이다. 부처는 神(Brahman)과 自我(Atman)를 죽인다. 하지만 결국 空*Sunya : Sunya는 zero 혹은 Nothingness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불교적으로는 생멸하는 유의법의 반대인 진여의 상태를 말한다. 즉 일체의 연기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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