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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gatorium

가을연습2/A

旅인 2018. 6. 3. 15:58

안개는 바람이 되어 사라지다

포구의 방파제 안에는 안개가 꽉차 있다. 바다 쪽에서 낀 해무는 아니다. 안개는 내륙의 산골짜기에서 피어나 새벽 햇살를 타고 산능성이를 내려와 산과 바다 사이의 좁은 들을 채우고 포구의 방파제 안에 고였다. 방파제를 넘은 안개는 바다 위에서 바람이 되어 사라진다.

포구의 풍경은 그림자와 빛살이 안개 속에서 섞이고, 황토빛 위로 잿빛이 그물처럼 겹치고 스민다. 안개는 포구의 안쪽 바다에 비친 햇빛에 뒤섞이며 금빛으로 변했다. 빛은 수협건물과 선창가를 따라 일이층 높이로 나란한 건어물상과 음식점들의 유리창들을 낮은 목소리로 두드려댄다. 빛을 받은 유리들이 낮은 조도로 번쩍거리는 탓에 선창가는 술렁였다. 포구 너머로 차령산맥의 검은 끝자락이 내려앉고, 포구 안으로는 어선들의 고물과 마스트 그리고 내용을 알 수 없는 깃발들이 서로 부비적대며 그림자를 그렸다. 낮은 안개 사이로는 갈매기가 포구를 가로질렀다.

물때가 아닌지 정박한 어선들이 뱃전을 부비적거리는 포구 안에서 어선 한척이 발통소리를 울리며 나온다. 배는 안개를 가르고 물살을 가르고 빛을 가르고 방파제를 지나고 등대를 지나 바다로 들어선다.

가을이다.

서해의 끝까지 하늘은 아득했고 파랑이 이는 바다는 허연 포말을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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