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과 길 위에 서서 햇빛에 익고 바람에 마르는 가을을 보내는 일은 좋다. 햇볕은 맑고 따갑지만 대신 바람이 오후의 열기와 그늘에 깃든 서늘함을 비벼댄다. 밤과 새벽 사이, 새벽과 아침의 사이, 오후와 저녁 사이, 저녁과 밤의 사이, 그 분간할 수 없는 변경에서 밤과 새벽, 저녁, 그리고 또 밤이 어떻게 뒤섞이며 시간을 잠식하는가를 보기 또한 좋다. 낮과 밤, 밤과 낮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무수한 사이와 사이 속으로 흘러드는 풍경의 변화없이 밤과 낮으로 이분되는 단조로운 하루의 무료를 상상할 수 없다. 며칠동안 노을이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던 어제는 해가 조용히 졌다. 서산 아래로 해가 지자 들에는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어둠이 가라앉은 들 위의 나무의 우듬지나 구릉 위의 이삼층 건물의 지붕 위에는 아직도..
가난한 나의 나날에도 불구하고 20170414 벗꽃이 진다. 그 모습은 꿈 속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나른하다. 꽃잎은 햇살을 흔들며 떨어지고, 봄날의 땅에 쌓였다.점심 때에 궂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오후 내내 내렸다. 20170428 몇일동안 날이 좋았다. 아침 햇살은 꼭 가을 같았다. 오후가 되면 바람이 불었고 추웠다. 20170513 폭염과 영하의 바람 그리고 봄을 지나 도로 건너편 한전 앞 화단에는 장미가 빨갛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20170515 --- 비 내리는 여자 여자를 처음보았을 때 놀랐다. 짙고 넓은 아이라인 때문에 경극 배우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파파이스 앞 지하철 통풍구 턱에 앉아 한숨같이 담배연기를 뱉아내고 있었다. 화장과 옷차림 때문에 30대인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면 낡고 ..
PM 3:27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나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가을이 텅비어버려 하늘이 파랗던 날, 평상 위의 고추는 자줏빛으로 햇볕을 머금고 있다. 마침 바람부는 언덕 위에 내 생애를 햇살 아래 마악 널어놓은 참이다.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마을은 먼지와 가을 햇살 속으로 눈부시게 소실되고 산맥과 하늘은 까마득해서 전설같은데, 자신의 벗은 몸을 햇빛으로 가린 개울이 산과 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이때는 내 생애 속으로 덜거덕 정차한 세상의 오후 세시 이십칠분.마침내 세상이 나를 살고 있었다는 것을 눈부신 햇살 아래,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다 그런 것이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살아가기가 힘들었다는 이 나른..
땅거미로 까맣게 탄 철교 위로 하얗게 밝힌 차창을 이끌고 전철이 도심의 강을 건넌다. 열차의 바퀴소리는 늦은 햇살을 등에 지고 서쪽으로 잠잠히 흐르는 강의 소리에 지워졌다. 차창 속의 고달픈 하루를 보낸 자들의 지친 무표정은 보이지 않고, 전철이 지나간 교각 위로는 저녁이 여물고 있다. 하루살이들은 남은 생애를 탕진이라도 하려는 듯 맹렬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날고 있다. 사람들은 저무는 강 건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하루의 여분 위에 밥상을 펴고 마른 숟가락을 밥그릇에 드리우고 남은 끼니를 때울 것이다. 그래서 저녁을 이고 강을 건너는 전철을 보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xviii-xmmxiv
합정동에 살던 시절, 절두산에서 가양동과 행주산성 위로 피어오르던 노을을 보며 영원을 느끼고,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와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사랑이나 우정 등의 삶의 가치나 인간의 존엄성 따위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생활의 유한함과 평범성에 무릎을 꿇고, 아득하고 깊은 것들을 사유하기 보다 저녁 밥상을 마주하고 느긋한 저녁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영원, 우정, 사랑, 진실, 아름다움 등등의 것들이 생활과 부딪혀 하찮은 것들이 되어버리는 현실 아래 비굴하게 굴복해버리는 이 나이가 그다지 싫지는 않다. 하지만 일몰의 시간이 지난 후 서쪽 하늘을 피빛으로 뒤덮는 노을이 처참하게 아름다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xix-viimm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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