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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nus

찢어진 기억의 22장 10절

旅인 2018. 6. 16. 18:49

용납되지 못했던 기억의 22장 10절을 찢어...

왜 저 강물이 허연 김을 풀어내며 얼어붙지 못한 채 겨울의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지 아는가? 자신의 대륙을 떠나온 새가 캑캑 울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다 죽어버린 이 낯선 섬. 섬이라고 부르기에 너무 옹졸하여 대신할 이름을 찾지 못하여 강이 뻘을 토해낸 이 곳에서 은행나무 잎이 모두 떨어져 내리고 더 이상 추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할 때, 강물마저 얼어터져 버린다면 추억을 매장할 외로운 어느 곳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사공은 강 건너편에서 잠이 들었고, 물에 젖은 검불더미로는 불을 피울 수 없었다. 추위를 면하고자 시간이 남기고 갔던 사랑이라는 것에 마지막 불을 붙였다. 네 편지 속에 깃들었던 향기는 유황냄새 속에 스며들고, 쓰여있던 단어들이 빠지직 거리며 타올랐다. 함께 연기를 피우던 젊은 열정과 짧았던 행복 위로 낙엽과 잔가지들을 덮었다. 따뜻한 온기가 뼈 속까지 밀려왔고 곱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허망 속으로 밀어 넣자 개암나무 가지 타 들어가는 냄새가 섬에 가득했다. 화장한 편지의 뼛가루가 어둠 속으로 밀려가고 핏줄 속에 온기가 돋자 드디어 나의 손이 배반하였다. 가슴과 머리로는 알았지만 쓰지 못했던 마지막 단어를 기억해 낸 한 손이 사랑한다 썼고, 들을 지나던 바람은 보고 싶어 소리쳤다. 그러자 잊혀지지 않고 어둠의 한 구석을 밝히던 너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나의 왼쪽 눈에 와 박혔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거야. 곁에 있으면서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저주할 수 밖에 없어…라는 너의 말 속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데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저주라는 것을 배웠다. 토사가 내질러 논 이 망각의 섬은 이름조차 없고, 내일이면 안개에 뒤덮여 사공조차 찾지 못하겠지만… 얼지 못한 겨울과 불모의 거친 섬과 잊혀질 수 없던 저주를 향하여… 우표조차 용납되지 못했던 기억의 22장 10절을 찢어, 꺼져가는 시간에 다시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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