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vocabulum

바람의 무리-7

旅인 2018. 6. 11. 15:51

노래에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대에는 시(詩)를 바람(風)이라고도 했다[각주:1]. 그 바람은 들(민중)에서 노래가 되어 제왕의 침전으로 흘러들었다. 어느 한 개인의 노래라면, "시경의 노래를 전반적으로 평하자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각주:2]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세유의 노래(La Marseillaise)가 민중 속에서 울려퍼질 때 혁명의 바람이 프랑스를 휩쓸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민중 속에서 소리 높게 울릴 때, 거기에는 결단코 사악함이 없다. 개인이 사악한 것이지, 민중은 사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래는 가볍고 바람처럼 세상의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바람이 불면 풀이 눕고 나무잎이 흔들리듯 세상은 그 노래를 듣는다.

바람둥이를 한자로 쓴다면, 風人일 것이다. 하지만 풍인이란 나그네이다.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며 저 마을의 노래(소식)를 이 마을에 전하고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얻는 사람, 바람처럼 거처가 없는 사람이 바람둥이이지,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을 것 같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은 후, 간혹 지하로 내려간다. 밤 11시부터 국악방송에서 하는 황윤기의 '세계음악 여행'을 듣는다. 듣다보면 나른해서 정신과 육신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경계 속으로 음악이 내 몸에 젖어든다.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을 적시던 기타의 선율이 흔들리며 소멸되거나, 파두를 부르는 여가수의 낮은 목소리 속에서 흘러나오는 한숨, 이런 소리들이 마지막으로 사라질 때의 그 미묘한 떨림을 만날 수 있다. 듣다보면 소리에 생명이나 영혼이 없다고 단언할 수가 없다. 내 속에 없을 수는 있어도 말이다.

  1. 311편의 시경 중 160편은 각국 여러 지역의 민중들이 부른 민요이다. 노래가 채집된 지역이나 국가 이름을 따서 豳風, 鄭風이라고 시를 분류했다 [본문으로]
  2.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본문으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