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vocabulum

바람의 무리-1

旅인 2018. 6. 11. 15:28

......떠 다닐 수 있는 것에 대한 허전한 묵상

여기는 아스팔트 위, 8월이 지글거리며 익는다. 길 위에서 나는 일한다. 일이라기 보다, 어쩌면, 생이라는 것에 쓸데없이 끌려다니다,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왔고, 품을 팔게 되었다. 일당을 정산한 후, 까맣게 내린 밤을 따라 집으로 가는 여벌의 시간은 헐겁다. 나의 노동[각주:1]이란 이렇게 하찮은 것이다. 8월동안 하루에 300ml의 보온병에 냉수를 대여섯번 씩 채웠다. 몇 모금의 갈증으로 보온병의 찬물은 바닥이 난다. 새로 채운 물은 8월의 태양과 열기에 달궈진 육신의 빈 속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나는 허기와 같이 갈증이 시작되는 그 허황한 빈 곳을 알지 못한다. 그 허황한 빈 곳에 채워진 물이 넘치는지 몸의 거죽으로 배어나와 땀이 되었다. 기진할 정도로 땀을 흘린 이번 8월에는, 소변이 마려워 다급히 고이춤을 풀어도 나오는 오줌은 마른 한숨 같았다.

오후 4시가 되면 속옷과 겉옷 그리고 땀에 절은 몸은 34°C[각주:2]의 여름에 굴복하고 만다. 아침부터 정오를 지나 최고온도에 다다르는 오후 4시까지, 버텨나가기 위하여 이를 악물었나보다. 오후가 되면 입 안이 얼얼했다. 더위의 무한함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나날들의 16시, 아스팔트의 화끈거리는 복사열 위로 나무와 건물의 흐릿한 그림자가 흘러들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면 참새들도 지쳐 입을 벌리고 핵핵거린다. 입맛을 잃었는지 모이를 주어도 몇알 만 쪼아먹은 뒤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간다. 덥다. 한모금의 물을 먹고 땀을 닦아내며 한줄기의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7월과 8월의 뜨거운 길 위에서 바람과 그 무리(等屬)를 보아왔다.

xxv-viiimmxvi

  1. 어떤 자들은 근로라고 했지만,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의 근로보다, 힘겹게 몸을 움직여 밥을 빌어먹는다는 뜻에서 노동이라는 낱말이 서글픈만큼 좋다. [본문으로]
  2. 2016.08.21일 14:32분 36.5°C의 온도를 기록했고 내가 서 있는 아스팔트 위는 복사열 탓에 40°C를 상회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