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슬프거나, 조금 더 삶에 대한 갈증을 느낄 수 있겠지만, 비틀거리던 생의 어느 날이 자신을 이끌고 이 곳으로 왔을 것... 자유란 짜오프라야 강변의 높게 솟은 벵갈나무의 짙은 그늘 아래 평상을 내어놓고 그 위에 앉아 몇일이고 강물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숨막히는 남국의 습기와 열기 속 일지라도, 살아가는 중에 며칠은 이렇게 잠잠한 강 가에서 새벽을 맞이하고 싶다. 아무런 이유는 없다. 강물을 바라보면, 자유란 철학스럽거나 보편스러운 것 따위와는 별개다. 강물의 흐름을 따라 아침의 싱그러움이 스며들었고, 열대 몬순의 시간이 지닌 넉넉함과 석양이 지면서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올 즈음엔, 턱을 괴고 강물을 바라보면 자유란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강은 끄룽텝 마하나콘,..
자 우리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예이츠의 詩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문득 우리에게는, 너는 성산동에 살았다. 성산동과 합정동, 망원동이 너희 집 근처에 함께 섞여 있었다. 망원동은 그 이름이 아득하게 멀었고, 그 좁은 골목에 난립한 집들과 널린 빨래를 보면,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기란 정말 요원했다. 분명히 망원동의 한 가운데 임에도 간혹 합정동이 있었고, 합정동에 의해 밀려난 망원동이 성산동을 범하기도 했다.지엽적인 번지수 문제를 덮어놓고 본다면, 대체로 망원동과 합정동은 도로 양편의 상점들로 구분되었다. 성산동과 망원동 사이는, 망원동 쪽으로는 요꼬공장, 함석집, 무슨 설비, 간혹 보이는 선술집과 작부집, 자전거포로 어지럽고, 성산동 쪽은 가정집의 담벼락..
용납되지 못했던 기억의 22장 10절을 찢어... 왜 저 강물이 허연 김을 풀어내며 얼어붙지 못한 채 겨울의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지 아는가? 자신의 대륙을 떠나온 새가 캑캑 울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다 죽어버린 이 낯선 섬. 섬이라고 부르기에 너무 옹졸하여 대신할 이름을 찾지 못하여 강이 뻘을 토해낸 이 곳에서 은행나무 잎이 모두 떨어져 내리고 더 이상 추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할 때, 강물마저 얼어터져 버린다면 추억을 매장할 외로운 어느 곳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사공은 강 건너편에서 잠이 들었고, 물에 젖은 검불더미로는 불을 피울 수 없었다. 추위를 면하고자 시간이 남기고 갔던 사랑이라는 것에 마지막 불을 붙였다. 네 편지 속에 깃들었던 향기는 유황냄새 속에 스며들고, 쓰여있던 단어들이 빠지직 거..
갯벌은 아름답다. 오후 네시나 다섯시이면 더욱 그렇다. 뻘은 수분을 머금고, 수분은 빛을 껴안아 어디가 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르게 발광하는 오후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갯벌은 아름답다. 아침에는 조금 우울해 보일지 몰라도 맨발로 갯가로 나가면 대지의 끝을 흐르는 온갖 습기와 찰진 흙의 연약하고도 강고한 생명력을 차디찬 촉감으로 읽을 수 있다. 밀물이 갯벌을 따라 밀려오고 빠지며 내는 함성은 조용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밀물이 차며 들어올 때 빠지던 바닷물은 뒷물에 다시 밀리고 밀려가며 만조로 차오르면, 뻘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조개는 뻘을 토해내며 짠물을 받아들이고 소라와 고동은 다시 물결에 흔들리며 보글보글 꿈을 꿀 것이다. 다시 썰물이 되면 소란스럽던 바닥은 드러나고 웅덩이에..
눈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열차가 지나가기 까지 계절로 가득합니다. 철길 위로 오후의 햇빛이 반짝이고, 가령 亡命이라든가, 개암나무 잎, 그리움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입맞춤하는 시간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대합실은 여름이면 서늘하고, 겨울이면 난로에 조개탄을 땝니다. 그러나 늘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열차가 지나는 도시와 소읍의 이름이 적혀진 시각표가 벽에 걸려있고, 그 옆에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돈벌이를 위하여 밤길을 달리거나, 아무도 모르는 저들만의 사랑을 하기 위하여 그 겨울밤을 건너왔다. 저들의 은밀한 살 냄새와 체온 같은 것, 기나긴 불면의 밤 끝에 맞이하는 먼 동네의 아침, 그런 것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 마지막으로 한번 만이라도 이..
사월은 황사와 함께 시작한다. 그래서 이 봄에 눈을 감았던 것 같다. 그리고 밤 중.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라일락이 피어난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목련은 져버렸고. 올망졸망 꽃은 가녀린 불빛을 삼키고 다시 빛을 토하며 골목에 드리워져 있다. 라일락 꽃잎이 빛을 발하면 밤바람은 부드럽고, 음악처럼 산보를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정이 오기 전까지 라일락 향기가 뚝뚝 떨어지는 거리와 골목길을 거닐던 젊은 날들은 이제 가버렸다. 아니 그보다는 갈증이, 세상에 대한 열광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한 그리움이, 소리치고 싶은 나날들이, 울분과 환호, 그런 것들이 내 몸에서 다 빠져나간 탓일게다. 용서해다오... 이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죄이다. xviii-ivmmvi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느껴야 할 것을 단지 생각만 하기 위하여, 글로 쓸 수 없는 것들을 쓰고자 했던 탓에... 강의 칠흑같은 나신으로부터 하얀 김이 올라왔다. 하얀 김은 또 다른 김과 섞이고 추운 대기 속에 풀어지면서 안개가 된다. 강 건너편 강변도로 위의 가로등에서 날라온 빛이 안개의 입자에 부딪혔고 다른 입자로 반사되며, 다시 섬의 외등빛과 함께 비벼진다.그리고 강변의 숲과 가지를 빛으로 감쌌다.안개에 갇혀 날아가지 못한 빛은, 안개 속에 산란하고 또 산란된 빛을 잉태하며 빛의 덩어리가 되었다. 빛의 덩어리는 안개로 풀리며 춤을 추듯 검은 강물을 따라 흘려갔고 섬 주변으로 풀려지고 스민다.잎이 진 은행나무의 단조로운 가지와 미루나무, 은사시나무의 가지들이 섞여 빛을 거스르고 있..
가슴의 내륙을 돌아 뼈 속으로 스미는... 어제는 맑았는데, 새벽에는 가을비가 내렸다. 빗소리에 어둠이 조금씩 씻겨가더니 아침이 왔다. 도로는 젖은 낙엽들로 물들어 있다. 가을은 젖고 떨어지고 밟히고 말라바스러지며 조금씩 겨울의 낮은 햇빛 속으로 흘러들어가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조락에서 사멸에 이르기까지의 느릿한 추이를 몽상할 수는 없지만, 이울고 떨어지고 죽고 사라지는 추이의 끝에 마침내 주검마저 사라져버린다는 기약은 처절하게 아름답다. 죽어서 사라지는 시간은, 살아서 죽기까지의 한 생애보다 더 오래된 전설일 수도 있다. 낙엽을 태우며, 봄에서 한 여름을 지나 자신들의 세포 속에 간직했어야만 했던 메마른 낙엽이 피워올리는 낮은 냄새를 들을 수도 있다. 산다는 것은 분명 치사하고 아니..
- Total
- Today
- Yesterday
- 오후
- 겨울
- 편지
- 국도의끝
- 산수고
- 봄
- 합정동
- 間
- 간이역
- PhraAthit
- 道
- 생애의언저리
- 염호
- 窓
- 섬
- 바람
- Brahman
- 가을
- 苦
- Process
- Tehran
- SenadoSquare
- Requiem
- 지옥의47번지2호
- 旅
- 山河
- Iran
- 격포
- 罪
- zayandeh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